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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제(Le Corbusier)

건축소방설비과 2018-08-12 조회 : 1725
르 꼬르뷔제(Le Corbusier)
 “오직 자연만이 인간에게 영감을 준다.
자연이 진실이다.”라는 철학의 건축가.
l  르 꼬르뷔제에 대해서
본명: 샤를르 에드워드 쟌느레
주요약력
1887년 10월 6일 스위스의 라쇼데퐁스에서 출생.
1909년 ~ 1910년 오거스트 페레.
1910년 ~ 1911년 피터 베렌스 사무소 근무.
1914년 도미노 시스템(Domino System)을 발표.
1917년 순수주의 운동전개 순수 파 창시.
1918부터 화가 오장팡(A. Ozenfant)과 함께 순수파운동 전개.
1922년 근대건축 5원칙을 확립.
1925년 [건축을 향하여] [도시론] 등의 저술 및 [인구 300만의 도시계획안].
1927년 가르슈의 저택(Garches), 제네바의 국제연맹회관 계획 (Palace of the League of Nations).
1928년 CIAM(근대건축 국제회의)창단 멤버.
1931년 사보이 별장(Villa Savoye).
1932년 파리대학의 스위스 학생회관(Pavilion Suisse a la cte Universitaire).
1945년 건설자 모임(ASCORAL)을 조직, 세 개의 “인간시설”’제창’(농경단위, 방사집중도시, 선형 (線型)공업도시)
1950년 샨디갈(Chandigarh)의 관청계획
1952년 위니테 다비다시농
1954년 롱샹의 교회당(The pilgrimage church of Notre Dame-du-Haut: Ronchamp)
1920년~1960년 사이의 근대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거장.
1965년 남 프랑스의 로크브룬네에서 작고.
 
l  근대건축의 5원칙 (5 Point of Modern Architecture)
²  지주 (Pilotis)
²  옥상정원 (Roof Garden)
²  자유로운 평면 (Free Plan)
²  자유로운 입면 (Free Façade)
²  연속 창 (Long Window)
 
①    지주(Pilotis)
철근콘크리트나 철골구조의 발달은 구조체로서의 벽이 유지하고 있었던 기능적 필연성을 제거하는 콘크리트와 철골기둥으로 구조체를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발달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지면을 완전히 해방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끌어 주었다. 르 꼬르뷔제는 이 같은 생각을 상당히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1920년 이전에 이미 지면으로 45m위에 조립한 격자 위에 얹은 도시계획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이후의 도시계획에서 선언한 ‘지면에서의 해방’은 그 구상의 결론이다. Maison Citrohan 주택계획에서는 가구의 다리와 같은 필로티가 ‘거주하는 상자’를 지탱하고 있는데 이러한 건축은 지우 위에 어디서나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로 까지 확대될 수도 있었다. 1929년에 이르자 르 꼬르뷔제는 이 같은 구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전개하여 1929년 모든 지면은 사람들의 활동과 식물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일과 거주를 위한 공간은 지면 위에 자리잡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1층에 자리할 실내공간이 2층으로 올라가고 외벽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방식이다. 원 뜻은 기초를 받치는 말뚝이라는 뜻이다.
1931년 사보이 별장(Villa Savoye)
 
    ②옥상정원 (Roof Graden)
르 꼬르뷔제는 옥상테라스의 장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주로 실용적인 이유를 들었다. 그에 의하면 옥상테라스의 장점은 눈이 많은 북유럽 지방의 경우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빙수의 위험 없이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때 물의 집의 중심을 향해 흐를 수도 있지만, 이 물은 주택 내부에서 오르는 열이 있기 때문에 동결의 위험은 없게 된다. 여기에 엷은 층의 흙을 덮어두는 경우 옥상테라스는 언제나 적당한 습기가 유지되어 식물이 자랄 수 있기 때문에 주거공간을 추위와 더위로부터 완전히 차단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이 같은 옥상테라스의 초기 개념은 이후의 작품인 Savoye주택에 이르러서는 보다 조형적인 세계로 귀결되어 선박의 이미지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유럽 각지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옥상이나 샹디갈의 사무동과 회의동 옥상에서와 같이 ‘빛 아래 집합된 입체의 교묘하고도 장려한 연출’로 승화되어 공간의 새로운 차원을 풍요하게 해주고 있다.
   최근에만 해도 옥상정원은 팬트하우스, 옥상 테라스 같은 곳에 실용적인 공간 활용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 지어지는 고층 아파트 또한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옥상은 빈 공터, 물탱크, 입주민들의 이불빨래와 같은 것들이 주가 되었었다.
  
    ③   자유로운 평면 (Free Plan)
지금까지의 건축면은 구조벽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1914~1915년에 걸쳐 르 꼬르뷔제는 건축의 참된 유연성을 추구하였다.
내부공간의 구성을 사용자의 자유에 맡긴다는 사고방식은 1932년 알지에의 오뷰계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고, 바이센 호프 주택(Weissenhof )에서 이동식 간막이를 도입해서 야간에는 거실을 3개의 작은 침실로 바꿀 수 있게 처리했는데 이 작품에서 나타난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은 단지 주거공간에 참다운 가동성을 확보한다는 방법에 그치지 않고 그의 공간적이고 조형적인 의지를 관철시키는 방법이 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④    자유로운 입면 (Free Façade)
자유로운 파사드의 건축원리는 독립되어 구상된 원리라기 보다는 이상의 네 가지 원리의 준수에 뒤따르는 조형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파사드의 구성원리는 미스의 경우처럼 완전한 유리상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르 꼬르뷔제의 경우 파사드란 회화의 화면과 마찬가지로 항상 개구부와 비개구부로 질서가 부연되어야 하는 면으로 인식 되었기 때문이다.
 
⑤    연속 창 (Long Window)
건물의 구조에 제약받지 않는 수평으로 긴 창으로 가로 폭은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건물 내부에 햇빛을 고르게 비쳐들게 함으로 자연 조명이 되어준다. 사보아 주택(Citrohan)과 바이센 호프주택 또한 그러한 형태의 창이 설치되어있다. 그리고 모든 실내공간을 한결같이 조명할 수 있다.
 국제연맹 본부 계획안에서는 길이 200m에 이르는 가로로 긴창이 선보이게 되기도 했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그였지만, 라 쇼-데-퐁스에 있는 미술, 공예 학교에서 실질적인 기예를 배웠고, 연수형태의 여행(이탈리아, 발칸반도, 이스탐불, 이도스 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등지를 두루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빈의 요제프 호프만과 파리의 앙리 소바즈와는 친분관계를, 파리의 오거스트 페레와 베를린의 피터 베에렌스와는 도제관계를 맺었다. 이 밖에 독일의 미술 공예 개혁운동의 리더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독일 공작연맹 소속의 헤르만 무테지우스와 하인리히 등을 만나게 된다.
  
 르 꼬르뷔제가 응용하고 있는 공간관은 큐비즘과 미래주의에 영향받은 것으로, 사물에 일반적 관심을 던져준 큐비스트들과 공간을 인접한 대상물들이 침투하는 영역으로 파악한 미래주의자들의 공간개념이 르 꼬르뷔제에 의해 건축적으로 형상화 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공간은 무한하며 어떠한 구속없이 팔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둘째, 공간은 모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나 기하학에 의해 치수가 결정되며 인식된다. 일반적인 구조는 강방형이며, 건축은 3차원적인 크로스 워드와 같이 어느 부분은 비어있고 어느 부분은 꽉차있어 이 양자간에 명확한 선이 나타나게 된다.
셋째, 관찰자와 매우 특수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관찰자와 공간의 어느 한쪽은 이동한다는 유동적 공간개념이다.
 
르 꼬르뷔제의 창작활동에 이론적인 배경을 이루게 되는 구조개념은 최초의 주택을 지은 1905년에서 도미노 시스템을 제안한 19147년까지의 10년간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몇 가지 사실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특히 그가 페레의 사무실에서 잠시 근무했던 1908년의 경험은 그의 건축활동에 새로운 차원을 갖게 했다. 이 사무실에서 그는 철근콘크리트의 구조에 관한 기초를 터득한 이외에도 고전건축의 질서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페레와의 접촉에서 르 꼬르뷔제는 철근 콘크리트가 미래의 가장 중요한 건축재료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는데, 페레는 르 꼬르뷔제에게 Viollet le-Dec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합리주의 건축철학을 고취시켰고 구조를 적절히 디자인하기만 하면 쉽게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자들의 논리를 접하게 했다. 또한 콘크리트라는 재료가 내구력이 있고 경제적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콘크리트 골조가 고딕구조의 중심사상과 고전주의적 형식의 인문주의적 가치관과의 대립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접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르 꼬르뷔제는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역학적 효율성을 파악하게 되었고 철근콘크리트에 의한 합리적인 건축의 생산가능성을 받아들이게 되어 1915년 자신의 조형적 특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 막스 뒤브와 함께 일련의 철근콘크리트 시스템을 구상했는데 이러한 시스템 중에서 가장 유명한 도미노 시스템은 경제성과 견고성, 그리고 시공속도와 질에 중점을 두고 개발된 것으로써, 그가 1920년대에 맞이하게 될 획기적인 도약의 디딤판이 된 동시에 르 꼬르뷔제에 건축의 진정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 도미노 시스템상에서 골조의 각 치수는 그 기둥의 배치상태가 좋음에 따라서 내부공간에 무수한 조합을 가능하게 하고 외벽에서는 의도한 만큼의 채광이 주어질 수 있었으므로 건축조형에 새로운 차원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모듈이라는 말을 황금분활과 관계시켜 새롭게 해석한 것이 르 꼬르뷔제의 모듈러이다. 이 개념의 발상은 근대사회를 보는 르 꼬르뷔제의 관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는 근대사회의 건축이 수행해야 하는 과제가 표준화와 프래패브리 케이션의 방법을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주택의 대량생산이라는 보편적으로 적용가능한 치수시스템에 입각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겼고 1948년 [[Modulor]]라는 저서를 출판하게 되는데 출판되자마자 전세계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Modular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치수와 기하학적의 공통분모를 정하고 있다. 한 변이 1.13m인 정방형을 겹친 길이 2.26m가 주택에서의 방의 기본이 된다. 즉 2개의 정방형이 황금분할이 되고 그것이 사람의 발끝에서 배꼽까지, 배꼽에서 머리끝까지, 그리고 다시 들어올린 손끝까지의 비율을 결정한다. 이 사람의 ‘이상적인 키’는 1.829m이며, 이 도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을 직접 둘러싼 가장 작은 단위의 공간으로부터 가장 큰 공간의 치수에 이르기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듈러의 가장 작은 치수는 1/15,000m/m이며 크게는 혹성간의 거리에까지 이르는 것이고, 이는 르네상스 이후로는 처음으로 정의된 건축비례 체계라는 점에서 중대한 건축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1920년 ‘건축구성은 기하학’이라고 천명한 르 꼬르뷔제는 주거건축에 있어서 형태구성의 이론을 정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우주는 무질서한 것으로 확신하는 그는 무질서를 정리하고 개조하기 위해 인간의 주거를 그 주위의 무질서한 자연과 결별한 질서있는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주거의 내부공간은 그 주변의 자연공간과는 달리 인간에 의해 지배되고 질서 잡힌 공간이며, 건축가는 그 공간을 가능한 한 견고한 방어벽에 의해서 그것이 외부의 무질서한 공간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구성의 제 1형식은 여러 기능에 따라 각 블록으로 나뉘어진 각각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매스로서의 내부공간의 주위를 벽면에 의해 넓혀가는 것이다. 르 꼬르뷔제는 “이 형식은 유기적인 이유에 따라 인접물의 옆에 나타나는 각 조직의 연결로 된다.”고 했는데, 이 형식은 거대한 구성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 변화의 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LA Rocbe주택을 들 수 있다.
제 2의 형식은 Stein주택이 대표하는데 “완전히 순수하게 인식된 내부공간에 모든 조직을 집어넣는 형식”을 지칭한다. 르 꼬르뷔제는 모든 건축기능을 가장 단순한 형태인 입방체 속에 밀봉함으로써 최고의 정신적 쾌락을 맛보았는데, 그가 이미 근대건축이 철과 콘크리트에 의해 취득한 구조체의 이점을 깨닫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주택의 평면에서 그는 일체의 하중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자유로운 벽체를 자유자재로 구획하면서 각각의 가능을 수행하는 내부공간을 엄격하고 깨끗하게 정리해서 외부로의 확장 가능성이 제한된 외피 안에 담아놓는데 성공하고 있다.
제3의 형식은 “외부로 노출된 독립골조에 의해 단순명쾌하고 마치 유리와 같이 두툼한 외피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은 각 층마다에서 변화를 가져와 모든 방의 유용한 용적을 그 형태와 수량에 의해 정할 수 있게 되며, 구성상의 풍부함을 얻을 수 있는 형식이며 Weissenhof 주택은 이러한 제 3형식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l  도미노 구조 계획안 (Domino System)
 : 6개 기둥, 3개 슬라브, 계단

대표작품
 
롱샹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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